여 년 전 필자가 속한 교단 초기 선교부장을 오래 하셨던 고 한명동 목사님이 “선교사는 선교지에 뼈를 묻어야 한다”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옛날에는 선교사가 한번 선교지로 떠났으면 그 마음 그대로 끝까지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처럼 선교사의 헌신은 평생에 걸친 헌신이었다. 그 시기 서구에서는 단기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 다양한 사역으로 참여하고 있었고, OM이나 YWAM 등과 함께 하는 단기 선교사들이 이제는 선교 현장의 한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단기선교사들은 보통 1~3년 정도 선교지에서 봉사하며 짧은 기간이라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선교사역에 참여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어디든지 달려가는 단기선교사들의 헌신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는 단기 선교사들만으로는 선교 현장을 깊이 이해하고, 인내함으로써 익은 열매를 얻기는 어렵다. 따라서 선교 현장에 정착하여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장기적으로 헌신한 가운데 목표를 갖고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단기 선교사들도 장기 선교사들이 있는 현지 선교팀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선교에 참여할 때 더 효과적인 사역과 헌신의 기회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선교지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의 기준으로 선교 헌신을 가늠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좀 피상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교지에 오래 있음으로써 오히려 타성에 젖을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정해진 은퇴 시기 후에 선교지에 계속 머무는 것은 후원 교회나 현지 교회에 유익보다는 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교지에 오래 머물며 사역한 것은 귀한 헌신임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선교사들은 자신이 선교지에 몇 년 있었는지를 자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선교지에 오래 머문 장기 선교사들일수록 자랑하기 보다는 재헌신에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재헌신은 (n+1) 번째 헌신이다. 우리는 보통 주일 오후 예배를 무슨 헌신예배라고 이름을 붙여서 드리곤 했다. 그러면서 ‘헌신’을 너무 자주, 너무 작게 하는 것 같아 멋쩍어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하는 헌신’이란 없다. 사실 선교사 바울은 더 철저하게,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의 헌신을 매일 지켜나갔다. 재헌신은 우리의 영적 예배와 병행한다. 바울은 예배드릴 때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러한 (n+1) 번째 헌신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지만 주님께 드리는 나만의 은밀한 사랑의 고백과 같은 것이다. 수시로 주님께 나의 죄를 자백하거나 뜻을 정하고 은밀히 금식하거나, 예배 중에 주의 떡과 잔에 참여하거나 또는 큐티 시간에 은혜받은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재헌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재헌신을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실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면의 ‘재헌신’이 있는데, 그것은 실패와 침체와 좌절과 포기 후에 다시 주님의 은혜로 회복될 때에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재헌신이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어 교제가 회복되고 성령께서 심령에 평강을 부어 주실 때에 그동안 낯 뜨거워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사랑의 고백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 재헌신은 주님께 아무 요구도 조건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길고 어두웠던 원망과 의심의 터널에서 벗어나 주님을 다시 모시어 들이는 것이다. 이마저도 주님께서 아무 모르는 중에 늘 내 곁에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일상의 헌신이 깨어진 채 그냥 겉도는 생활이 오래 이어지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 돌이키기가 무척 힘들어지는 것 같다. 주께서 나를 그냥 그대로 두신다면 우리는 물 한 움큼도 보듬을 수 없는 항아리 조각 같을 수도 있다. 찬송 한 소절도 퍼올릴 수 없게 된 나의 깡마른 내면이 어떻게 재헌신의 샘으로 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주님은 나의 첫사랑과 첫헌신을 잊지 않고 계신다. 주께서 내게로 오셔서 꾸짖으시든지 어루만져 주시든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기만 하면 주님께 감히 말도 꺼내기 힘들 재헌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필자의 간증이고 재헌신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간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한 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헌신의 샘이 바닥이 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교회 개척을 시작하게 하셨다. 지난 부활절 이후 새벽 기도회 시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회복시키시고 재헌신의 자리로 끌어올리시는지를 묵상하는 중에 나에게도 재헌신의 은혜를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을 들기에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다시 재헌신의 출발 선상에 세워주시는 주님께 나의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송구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직 나는 여기저기 터진 살갗이 보이는 채로 있지만 내 속에 주님께서 다시 채우신 우물에서 일상의 재헌신을 길러 올릴 수 있도록 해 주시기에 너무나 황송하다. 어찌해야 할지, 잘 할 수 있을지, 아무튼 다시 주님께서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으니 그 한마디 붙드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wec
이신철 목사
(현 청주 등대교회, 전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전 WEC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