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유지했던 철옹성 같던 정권이 이렇게 맥없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Z세대의 혁명’, 또는 ‘학생 주도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문제의 시작은 독립 유공자 공무원 할당제였다. 1971년 독립전쟁 참전 용사의 자녀들에게 1%의 공무원 자리를 보장해 왔는데, 그들이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기 때문에 그 비율을 터무니없게도 30%로 확대하려고 시도했다. 40%의 높은 청년 실업률 속에서 치열한 공무원 시험(경쟁률 133:1)을 준비하던 대학생들은 즉각 분노하며 반발하였고, 7월 초부터 평화적인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강경 진압하면서 7월 중순부터 시위가 격렬해졌고 인터넷과 전화를 차단하고 군대까지 동원했다. 결국 일주일간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확대 계획을 철회하면서 사태가 진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친구와 가족들을 잃은 젊은 대학생과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여 정권 퇴진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 활활 번져나갔다. 8월 4일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8월 5일에는 결국 총리 관저가 포위당하고 총리가 군용 헬기를 통해 인도로 긴급 도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총리가 도피한 이후 화난 군중들에 의해 총리 관저는 약탈당했고, 30여 명의 정부와 여당 지도자들이 군중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군부와 야당 지도자들이 과도 연립정부를 수립한 상태로, 정국을 안정시킨 후에 총선을 다시 치를 계획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과도 정부의 수반으로 유누스 교수가 추대되었다는 점이다. 유누스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소액신용대출(Microcredit)을 처음 시작해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많은 국민이 존경하는 분이다. 그는 제3세력을 원치 않는 거대 양당들의 압력과 고발 등으로 그동안 해외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이번 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가 83세의 고령이고, 정치적인 기반이 없는 상황이라서 걱정이 되지만, 방글라데시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큰 역할을 기대해 본다.
제2의 독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감격스러운 민주주의의 승리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정권 붕괴 후 초반 일주일간 경찰이 손을 놓은 치안 부재 상태로 교도소 죄수들이 탈출하고, 떼강도가 몰려다니고, 여러 공장과 상점이 습격 받았다. 특히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그동안 억눌려왔던 야권 측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들이 힌두교인과 기독교인, 소수민족을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8월 12일부터 경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폭등했던 식료품 가격도 안정되는 등 이러한 혼란은 안정되는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총선을 다시 할 경우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유력한 현재 제1야당(BNP)은 물러난 정권 못지않게 부패하고 정의롭지못한 세력이며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과 손을 잡은 상황이라서 낙관할 수만은 없다. 또한 빠르게 발전하는 방글라데시를 놓고 전 정권과 친밀한 인도, 야당과 밀접한 중국, 그리고 러시아, 미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보이지 않는 알력과 다툼도 복잡하다. 한가지 희망은 위에서 언급한 유누스 교수와 학생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좀 더 정의롭고 깨어 있는 제3세력이 힘을 얻는 것뿐이다.
만약 제1야당(BNP)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게 되면서 힌두, 크리스천, 소수부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선교사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면서 선교 활동도 많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과거에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어려움 속에서 선교의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왔기 때문에 아직 절망하고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총선을 다시 시행하기까지 최소 1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동안 그 땅에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지도자들이 잘 준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섣부른 기대와 불안보다는 모든 것이 그분의 섭리 안에 있음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함께 이 땅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wec
글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