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에는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라는 가사가 있다. 정말 이 가사처럼 5년째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정말 ‘아리아리 하고 또 스리스리한’ 곳이다. 알 것도 같다가도, 잘 모르겠고, 싱글 때 있었던 인도보다는 쉬운 것 같으면서 어느 순간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 나라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참 ‘아리아리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인도 사역 후, 2015년 한국본부에서 섬기면서 다시 나갈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첫 사역지였던 인도와 닮은 이 땅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SL팀에는 한 부부가 있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사임한 상태여서 거의 문이 닫힐 뻔했으나, 주의 은혜로 다시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나, 공항에 마중 나와 줄 팀원이 하나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의 좌충우돌 방랑기가 시작되었다.
독립심이 강했던 나는 이전에 여러 사역을 경험했기에 ‘팀 없어도 혼자 하면 되지’ 하며 겁 없이 닫힌 땅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집을 구하고 비자를 해결하며 아이들 학교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구 하나라도 알고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제야 이전 사역지에서 받았던 팀원들의 섬김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우게 되었다.
2022년 4월, 도착 직후 적응할 틈도 없이 국가 경제가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매일 정전이 반복되고, 설상가상으로 나와 아내, 아들이 댕기에 걸려 사경을 헤매었다. 40도까지 오른 아들의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모기가 들어올까 창문도 열지 못한 채 땀을 흘리며 밤새 부채질을 하던 그날 밤,
‘주님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왜 이런 혹독한 시간을 주시나요? 우리 가족 좀 도와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원망과 불평이 터져나왔고, 나의 믿음마저 흔들렸다. 그러나 돌아보면 사람보다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신 훈련의 시간이었다. 권투 선수가 잽을 맞으며 맷집을 키우듯, 우리 역시 처음부터 이런 저런 큰 펀치들을 여러 대 맞고 나니 그 이후로는 어지간한 것들은 잘 견디며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지내온 것 같다.
현재 우리는 C에서 기아대책과 감리교 단체와 협력하며 태권도, 음악, 미술, 한국어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청년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건강한 신앙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많은 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4년 만에 두 유닛의 새 팀원이 합류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또한 우리는 미전도 지역을 방문하여 S종족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 학당 학생 중 한 명이 불교 성지 A지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 그 지역을 방문했다. 그 학생을 평화의 사람으로 여기며 관계를 쌓고, 앞으로 말씀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이웃 나라인 M도 함께 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M을 지상 낙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그곳에는 하나님을 예배할 교회가 없으며 영적으로 황폐한 땅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
이 땅을 위해 현지 사역자들과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리서치도 하며, FPG(Frontier People Group) 기도 제목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또한 1년에 한 번씩 기도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이 땅에서도 외국인이 비자를 받기는 쉽지 않다. 새 팀원 부부는 지난 10개월 동안 관광비자를 계속 연장하면서 언어 공부와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기아대책을 통해 교사비자를 받고 아내는 자녀들의 보호자 비자를 받고 있지만, 우리 역시 계약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년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여전히 언어와 거리 등 현실적인 장벽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를 이끄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믿음의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자 한다. wec
글 고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