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것

by wecrun

 “1년 동안 해외 단기선교사로 헌신할 사람, 강단 앞으로 나오세요!” 청소년 수련회 때마다 목사님께서 외치시던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자, 다들 나간다고 해서 나도 나가면 안 돼.’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나, 너를 부르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니까 순종하고 싶어요.” 청년의 때에 1년을 드리겠다는 다짐이 그때 마음에 새겨졌다.

 부단히 애쓰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대로 여름마다 단기선교를 다녔고 결국 1년 헌신하기를 결단하고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그 1년을 구체화하면서 그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사람들을 많이, 자주, 그리고 깊이 만나고 싶었다. 언어도 빨리 배우고, 선교사님들께 도움이 되고, 친구들과 깊이 대화하며 이곳에서 잘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모두 좋은 것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나의 열심을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청년의 정욕’이라는 말이 꼭 이럴 때 쓰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욕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게 조금씩 느껴졌다.

 언어를 배워도 늘 부족했다. ‘기타도 못 쳐. 찬양도, 기도 인도도 못 해. 사역에 도움이 안 돼. 하나님을 잘 전하지 못해.’ 나의 열정이 세운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스스로 쉽게 정죄하고 평가했다.

 답답함이 유독 느껴지던 어느 날, 기타를 들고 찬양했다.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 그 순간, 문득 잘하고 싶은 마음을 아직 십자가에 못 박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나님, 언어를 잘하고 싶어서 수업 시간도 늘렸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요. 오늘 친구를 만났는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어요.  예배할 때도 하나님의 임재가 이전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저, 예배 잘 드리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하나님, 제가 여기 있는 것이 기쁘세요?’

 너무 솔직해 부끄러웠지만, 연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나와 함께 임재의 방에 머물러 주셨다. 그렇게 한참 지났을 때, 내 머리속에 맴도는 생각이 입술을 통해 흘러 나왔다. “너는 나의 종이야. 너는 내 자녀야. 너는 예배자야.”

 원래 같으면 ‘저는 부족해요, 거룩하지 않아요, 완전하지 않아요. 현재의 저는 그렇게 될 수 없어요.’ 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그 음성을 가슴에 새겼다.

 그 후, 나를 옭아매던 모든 정죄의 이유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완전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해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그런 나를 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붙잡고 있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열심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많은 것을 잘 해내는 내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였다.

 나의 기준을 내려놓자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워졌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다시 시편을 펼쳤다.

 73편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내가 정해 놓은 기준에 열심에 도달해야 피난처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을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는 것. 그 은혜 안에 거하고, 그 은혜를 전하는 것. 주님은 그것을 원하셨다.

 ‘청년의 십일조’라 부르는 1년의 시간. 6개월 정도 현지에 머물며 느끼는 것은 ‘쓰임 받고 있다’는 교만이 아니라, ‘다듬어지고 있다’는 겸손이다. 결국 다듬어져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 내 삶을 온전히 쏟게 하시는 것 같다. wec

                                                                                          글 천승리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