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이 곳에 온 지 9년이 되었다. 처음 4년은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사역의 방향을 찾았고, 이후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BAM(Business as Mission)을 준비했다. 2025년, 마침내 주문제작 가구회사를 시작했다. 코로나와 쿠데타 시기에 유튜브를 보며 배운 기술로 베란다에서 아이들 책상과 옷장을 만들던 일이 회사의 시작이 되었다. 시편 23편 말씀처럼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첫 걸음을 내디뎠다.
회사 등록을 위해 동네를 다니며 이웃의 서명을 받고, 몇 달 간의 실사와 수많은 서류 전쟁, 직원 모집을 하던 중, 한 형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7년 전 우리 제자훈련센터를 지을 때 페인트칠 했던 ㅇ형제가 직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를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아는 사람이 가구는 한 번도 안 만들어 봤는데 페인트칠은 좀 해요. 그런데 가구도 만들 수 있어야 하지요?” “네, 저희는 둘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 형제가 일하고 싶은 것이었다. 미얀마에는 ‘아나데 문화’가 있는데 ‘부담 줄까봐 미안해서’ 같은 마음에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ㅇ형제는 교회에 잘 나가지 않고 불교도와 결혼해 14살된 아들이 있었다. 팔과 다리에는 큼지막한 문신이 있고, 꽁야(비틀넛)을 자주 씹어 치아가 갈색으로 착색되어 있었다. 우리는 계약상 근무 시간에는 꽁야를 씹을 수 없으며,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성실히 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불을 요청했다. 일거리가 없을 때 빌린 돈이 있는데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채권자가 당장 갚으라고 독촉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딱한 사정을 생각해 돈을 빌려주었다. 그 후, 그는 말씀을 열심히 읽으며 질문도 했고, 삶도 변화는 것 같았다. 예배시간에 말씀을 배우며 행복하다고 간증도 했다.
연초에 큰 주문이 들어오면서 두번째 ㅅ형제가 연결되었다. 신학생이었던 그는 이런 일을 해 본 경험은 없었지만, 참 성실했다. 계약 근무 기간이 끝났지만 그는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주문이 없어 계속 고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믿음으로 함께 가기로 결정했고, 계약서를 작성하며 주문을 위해 기도했다. 놀랍게도 다음 날부터 연이어 주문이 들어왔고 형제들은 기도 응답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던 중 ㅇ형제는 장모님과 본인의 병원비 때문에 사채를 써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일로 인해 두 직원에게 재정 관리와 저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은행 계좌를 만들도록도왔다.
그 과정에서 ㅅ형제의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부기관과의 혹독한 씨름 끝에 그의 가족 모두가 주민등록을 하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의 고등학교 졸업장도 공식적으로 효력을 얻게 되었다. 형제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해 보였고 그의 인생이 흑백에서 컬러 TV가 되는 순간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ㅇ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근 길에 신발이 끊어져서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것이다. 아침에 신발이 망가지면 그 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라 회사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말씀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몸이 안 좋다며 자주 결근했고, 결국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만 일하고 싶습니다. 빌린 돈은 나중에 갚겠습니다.” 10개월 동안 가족처럼 지냈기에 실망과 상처가 컸다. 남편도 깊은 낙심과 우울에 빠졌다.
하루는 탕자의 비유를 묵상하며 ㅇ형제가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다시는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며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내게도 같은 마음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보 같은 사랑을 하라고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낸 것 아니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얼마전 o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달부터 조금씩 나눠서 돈을 갚겠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o형제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형제 면접을 보았다. 함께 일하기로 했는데, 그가 이단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된 이상, 함께 할 수는 없었다. 현지인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키워가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함께 일할 형제들을 보내주시면 좋겠다. wec
글 김기쁨 사진 Unsplash 이미지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