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 40대 여자, 애니어그램 5번(사색가 혹은 탐구자), MBTI는 IIIIIIIIIIINTJ, DISC 신중형, 기질 테스트는 우울질. 어느 모로 보나 영어가 공용어인 국제 기숙사에서 질풍노도의 시기인 십대들을 데리고 살기에 적합한 재질은 아닌 내가 청소년 MK 기숙사 부모로 6년째 살고 있다. 스물일곱 살에 결혼한 후 자녀를 키우고 살림을 꾸려오면서 우리 가족의 식사 담당은 언제나 나였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한결같이 요리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직 책임감만으로 감당해왔다. 그런 내가 기숙사에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매일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청년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정적으로 호소하곤 했다.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삼십대의 막바지에 선교훈련을 받고 이후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자주 떠오르던 의문을 어느 날 한 동료 선교사가 깔끔한 문장으로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마음으로 무릎을 쳤다. “하나님, 일을 왜 이렇게 하세요?” 왠지 전보다 어른스러운 질문처럼 들리지만, 사실 의미는 일맥상통했다.
성인이 되어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영어는 아무리 해도 정복할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눈물을 머금고 수 년간 영어 공부를 한 끝에 기숙사 사역을 시작했지만, 십대들의 영어는 내가 배운 영어와는 또 다른 언어라는 사실을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 깨달았다. 충격적이었다. 그때도 역시 그 질문이 터져나왔다. “하나님, 저기 영어 잘하는 사람들 안 보이세요? 숨 쉬듯 편하게 영어하는 저 사람들 데려다가 시키세요. 심지어 언어가 같아도 십대들 코드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정말 모르세요?”
물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나를 많이 설득하시고, 이해 시키시고, 때로는 감동까지 주시며 이게 정말 될까 싶은 나의 의심을 무색하게 만드셨다.
함께 살던 아이들이 좋은 추억을 안고 기숙사 생활을 마무리할 때 (‘좋은 추억은 좋은 성품을 만든다’는 내 인생 모토 중 하나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자나 자녀문제 등을 알아서 해결해 주시면서 ‘너는 너에게 주어진 부르심에 매진하라’고 북돋우실 때, 마음이 유독 질척거리고 삐뚤어지는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뜻밖의 계기가 될 때… 그런 수많은 시간을 통해 왜, 굳이, 일을 이렇게 하시는지 나를 납득시키시는 하나님은 참 놀랍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될 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나의 불신앙을 용서하시고 주의 일을 계속해서 이루소서’ 하며 분연한 마음이 일지만,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제자로 살기로 결단하고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은혜 혹은 영적 성장이라 부를만한 많은 순간을 경험했지만, 내가 오늘 더 나은 선교사, 더 좋은 기숙사 부모가 되었느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많이 발전했네’하며 낯부끄럽게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길 때도 있지만, 지나온 시간과 주님의 정성을 생각하면 충분한 성숙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듯 여러 시간을 지나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자라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 너머를 보시고, 전체를 보시며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 굳이 내 역할을 만드시고, 당신의 지략을 사용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 덕분에,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나의 부족함과 지나침을 조금 더 인내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신 선한 일이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선을 이루시기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믿을 만하기에, 나는 더 이상 스스로가 완벽하게 믿을 만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그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저 주님만 꽉 붙들 일이다. wec
글 신세정

